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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해고를 당해도 구제받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고?

법률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를 당했다면 통상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법원에 해고무효확인의 소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대신(자세한 내용은 2019. 4. 15.자 ‘근로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권리구제절차 2가지’ 참조), 반드시 부당해고가 있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구제신청을 해야 한다는 신청기간의 제약이 있습니다.

 

 

반면, 법원에 해고무효확인의 소를 제기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제소기간의 제약이 없습니다. 따라서 해고를 당한 날로부터 3개월이 지나도록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지 못하였다면, 법원에 소를 제기하여 구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해고가 있은 날로부터 3개월이 지나지 않았더라도 노동위원회의 구제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법원에 해고무효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법률상 명문의 제약은 없지만, 일정한 경우 사실상 소 제기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어서 주의가 필요합니다. 판례상 인정되는 ‘실효의 원칙’이 그것입니다.

 

실효의 원칙이란, 권리자가 실제로 권리를 행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도록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여, 의무자인 상대방으로서도 이제는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신뢰할 만한 정당한 기대를 가지게 된 다음에 새삼스럽게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법질서 전체를 지배하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하는 것으로 인정될 때에, 그 권리의 행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법원 2005. 10. 28. 선고 2005다45827 판결)

 

실효의 원칙은 해고무효확인소송에도 적용됩니다.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고용관계(근로자의 지위)의 존부를 둘러싼 노동분쟁은, 그 당시의 경제적 정세에 대처하여 최선의 설비와 조직으로 기업활동을 전개하여야 하는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물론, 임금 수입에 의하여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근로자의 입장에서도 신속히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실효의 원칙이 다른 법률관계에 있어서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유로 합니다.

(대법원 1992. 1. 21. 선고 91다30118 판결)

 

근로자의 소 제기가 해고처분 이후 상당한 기간 경과 후 이루어져 근로자가 해고의 효력을 다투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관한 사용자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 법원은 실효의 원칙을 적용하여 소를 각하합니다. 소를 ‘각하’한다는 것은 소송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실체 당부의 판단을 하지 않고 소송을 종료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면 소를 제기하더라도 해고가 정당하였는지 여부조차 판단받지 못하게 되는 꼴이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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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효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①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도록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할 것

② 상대방이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신뢰할 것

③ 권리자가 새삼스럽게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

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하는 것으로 인정될 것이라는 요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고 그나마 객관적인 요건은 위 ①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느 정도 기간이 되어야 위 요건에서 말하는 ‘상당한 기간’에 해당하느냐가 문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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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하여 필요한 요건으로서의 실효기간(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한 기간)의 길이와 의무자인 상대방이 권리가 행사되지 아니하리라고 신뢰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는지 여부는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우마다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한 기간의 장단과 함께 권리자 측과 상대방 측 쌍방의 사정 및 객관적으로 존재한 사정 등을 모두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

 

즉, 대법원은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였는지 여부를 사안의 ‘구체적 타당성’에 입각하여 판단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상당한 기간’에 대한 일률적이고 명확한 기준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근로자가 회사에 항의문을 발송하고 해고처분 이후 2년 6개월 이상 지나고 나서야 해고무효확인의 소를 제기한 사안에서는 실효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으나, 근로자가 해고 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퇴직금을 수령하고 약 7개월 후 해고무효확인의 소를 제기한 사안에서는 실효의 원칙을 적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권리를 소멸시키는 소멸시효제도의 경우 소멸시효기간에 대해 법률에 명문 근거를 두고 이를 적용하는 반면, 실효의 원칙은 그와 같은 명확한 규정이 없이도 신의성실의 원칙을 근거로 상당한 기간에 대한 명확한 기준 없이 사안마다 달리 판단하며 적용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실효의 원칙을 적용하여야 하는 취지를 감안하더라도 법률상 명확한 근거규정도 없이 소멸시효기간보다도 더 짧은 기간을 ‘상당한 기간’으로 인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권리구제 가능성이 박탈되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점은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에 대한 비판을 떠나서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근로자로서는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즉, 정당성이 의심되는 해고를 당한 경우, 만일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즉시 권리구제절차를 거칠 수 없다면, 적어도 사용자에게 ‘해고가 부당하므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고 조만간 다툴 것’이라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향후 진행될 소송에서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그 기간이 길어진다면 중간중간 반복적으로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고 그 증빙을 남겨두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물론 여러 가지 사정을 모두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는 판례의 태도 때문에 이러한 조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으나, 그나마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