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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 안 갚는 사기꾼, 처벌할 수 있을까?

법률

사기죄는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경우, 또는 제3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한 경우’에 성립합니다. 상담을 원해 방문하시는 분들의 경우 대부분은 이미 재산상 피해를 입고 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경우 또는 제3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득을 취득하게 한 경우’에는 해당하느냐가 문제될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결국, 사기죄로 성립하느냐에 있어서 희비가 엇갈리는 지점은 ‘기망하여’에 해당하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기망하여’에 해당하려면 어떠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할까요?

 

‘기망’은 쉽게 말해서 사람을 속여서 착오에 빠뜨리는 것을 말합니다. 누군가가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다는 것은, 기망행위와 재산의 처분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즉, 기망행위가 재산의 처분행위의 원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속임을 당해 착오에 빠진 사람이 그 착오로 인해 재산을 처분하여야 합니다.

 

꾸어간 돈을 안 갚는 사람을 사기죄로 처벌할 수 있느냐는 대부분 여기서 결론이 나게 됩니다. 속아서 돈을 빌려준 것인지(제1유형), 아니면 속아서 돈을 빌려준 것이 아니라 단지 돈을 갚고 있지 않은 상태인지(제2유형)가 문제되는 것이지요. 제1유형의 경우 사기죄가 성립하지만, 제2유형의 경우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기꾼이 무엇을 속여야 할까요? 사기죄의 유형에 따라 속이는 내용은 다양할 수 있지만, 돈을 빌려준 경우라면 돈을 갚을 의사(변제의사)와 돈을 갚을 수 있는 능력(변제능력)이 속이는 내용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애당초 변제의사가 없음에도 변제의사가 있는 것처럼 속이거나, 변제의사는 있었지만 변제능력이 없으면서 마치 변제능력이 있는 것처럼 속여서 이에 속은 사람이 돈을 빌려주게 된 것이라면, 즉 속지 않았다면 돈을 빌려주지 않았을 것이라면, 사기죄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물론 제1유형과 제2유형을 개념적으로 분류하기는 쉽지만, 실제 사례가 제1유형에 해당하는지, 제2유형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특히 명시적으로(언어로써) 속이는 것뿐만 아니라, 묵시적으로(행동으로써) 또는 부작위에 의해서도(스스로 착오에 빠진 사람을 방치함으로써) 속이는 것도 사기죄에서 요구하는 기망의 유형으로 보기 때문에, 더더욱 구별이 어렵게 되는 것이지요. 언뜻 제2유형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분들도 돈을 빌려놓고서 갚지 않는 것을 보면 애당초 변제의사나 변제능력이 없었던 것인데 이를 속였던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후의 채무불이행 상태만을 가지고 돈을 빌릴 당시부터 변제의사 또는 변제능력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지능적인 사기꾼은 제2유형처럼 보이기 위해서 돈을 빌린 후 처음 몇 번 정도 일부 이자를 지급함으로써 돈을 빌렸을 당시에는 변제의사나 변제능력이 있었지만 이후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부득이 돈을 갚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변명할 여지를 남겨놓기도 하지요.

 

실무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제1유형에 해당하는지, 제2유형에 해당하는지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형사적으로 압박해서 빌려준 돈을 받을 목적으로 사기 고소하는 사건들이 너무 많다 보니, 정작 제1유형에 해당하여 고소하더라도 수사기관에서는 고소장에 제1유형에 해당한다고 볼 만한 상당히 의심할 만한 사정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 제2유형으로 보고 사기죄에 대해 무혐의처리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입니다.

 

형사적 압박을 가해 민사문제를 해결하거나 민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증거를 수집할 목적으로 수사기관을 이용하기 위해 제2유형에 해당하는 사건을 무리하게 고소한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수사에 임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고소인들은 종종 이런 말을 듣기도 하지요. ‘여기는 돈 받아주는 곳이 아닙니다. 빨리 고소 취하하시고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세요!’ 고소인 처지에서야 억울한 마음에 수사기관에 이것도 조사해달라, 저것도 조사해달라, 많은 요청을 해보지만, 수사 실무의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수사기관이 자신이 고소한 사건을 성실히 수사해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범죄의 경우에는 피해사실만 기재한 고소장으로도 충분하지만, 사기죄의 경우에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사기죄로 고소를 하고자 하면 사전에 자체적으로 가급적 충실히 조사해서 정리한 자료들을 고소장에 첨부해서 수사기관이 제1유형에 해당하는 사건이라고 상당한 확신을 가진 상태에서 수사를 하게끔 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사기 고소는 자칫 사기꾼에게 무혐의라는 면죄부만 안겨주게 되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